본문바로가기

HOME > 주요사업 > 신진연구자 지원

2019년 연구자우동현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북핵(北核)'의 몇 가지 기원

  안녕하세요, 우동현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엔젤레스(UCLA)의 아시아언어문화학과(Asian Languages & Cultures)에서 이남희 (Namhee Lee) 교수님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연구 관심사는 사회주의사, 냉전사, 환경기술사이며, 학위논문의 주제로 1940-50년대 북한과 소련의 협력관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원의 석사과정에서 북한사를 공부할 때 알게 된 여러 동학 가운데 한 분이 RIKS Academy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연구에 가장 필요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및 세계 각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다양한 연구자를 한자리에서 만나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와 지원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대학원에 진학한 뒤 북한사 수업을 듣게 되면서 학위논문의 주제를 북한으로 설정했고, 소비에트 락(Rock)의 선구자인 빅토르 초이(Victor Tsoi)의 음악을 우연히 접한 뒤 러시아계 한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려인의 존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45-1950년 북한에 파견되어 활동한 고려인을 가지고 학위논문을 작성했고, 이때 북한을 알기 위해서는 소련사를 잘 알아야 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소결에 도달했습니다. 오늘날 세계에 만연한 북한과 북한사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고, 나아가 북한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그들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전공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독특한 사회주의건설 과정은 비난이나 두둔에 앞서 그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한 이해가 필요한 주제입니다. 이때 소련이 협력(sotrudnichestvo)이라는 이름 아래 북한에 제공한 각종 원조와 지원은 북한사의 전개뿐만 아니라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반자본주의적 국가관계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허나 해당 주제는 선진적인 서구 역사학계에서도 아직 제대로 연구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현재 러시아와 한국, 미국 등지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차후 이러한 다국적 자료에 근거하여 소련의 대북한 과학기술 및 문화 원조의 양상과 변화를 재구성할 계획입니다.

 

  한국 대학원의 석사 과정에서는 주로 고려인의 역사 및 이들과 북한의 관련에 대해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러시아어를 능숙히 할 필요를 느껴 2017년 초 3개월간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어학연수를 수행했고, 같은 해 가을 미국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에는 학위 과정을 밟는 한편, 미국 의회도서관과 러시아 국립도서관 및 러시아 문서고에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이때 북한의 초기 핵발전사에 관해 주로 공부했고, 그 잠정적 결과를 로마대학,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워싱턴 DC에 소재한 우드로윌슨 센터,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등지에서 보고했습니다. 현재는 박사학위논문의 핵심 주제인 소련-북한 협력에 관해 연구를 시작할 준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냉전사 속에서 소련과 북한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지구상에서 거의 남지 않은 사회주의국가인 북한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든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미국이나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기존의 관습적인 접근에서 나아가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역사적 관점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울러 문서고 자료에 근거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북한 및 사회주의국가의 역사에 대한 만연한 오해를 교정하고,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게 하는 힘을 부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지식 및 매혹적인 역사적 서사를 생산하는 자부심과 그러한 작업을 통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실험 중 하나였던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오늘날 전 지구를 강타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폭풍을 견딜 수 있고, 나아가 이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제 연구를 지속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남은 방학 기간 엘에이에서 최근 출간된 체르노빌 관련 원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한편, 2020년 초 응시할 논문자격시험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후 2020년 여름부터 1년의 기간 동안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체류하며 현지 작업을 수행하고, 추가적 자료 수집과 논문 집필을 병행할 것입니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학생을 가르치며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여 오직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재정적으로 열악한 인문학 연구자에게 귀중한 지원을 해주신 점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를 드립니다. 차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포니정재단의 학술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해 미국과 러시아에서 북한사 및 한국근현대사 관련 자료 발굴 및 수집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특히 모스크바에는 북한사뿐만 아니라 한국독립운동사나 한국공산주의운동사의 새로운 모습들을 밝혀줄 귀중한 자료들이 무수히 많이 산재해 있는데, 이를 모으고 재단의 이름으로 정리 및 전산화하여 연구자들에게 공개한다면 한국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실로 막대한 기여를 하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