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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구자최덕효

코넬대학교, 아시아 정치학 전공 |

Crucible of the Post-Empire : Decolonization, Race, and Cold War Politics in U.S.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한 역사 연구의 길
“포니정 펠로우십은 미국 주류 연구기관이 제공하는 박사 후 프로그램 못지않게 조건이 좋고, 책 출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며, 한국에 장기체류하며 집필에 집중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제1기 수혜자로서 중요한 업적을 남겨 미래의 수혜자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일본 출생의 재일한국인 3세 역사학 연구자인 최덕효 박사는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선발 소감을 전했다. 한국에서 오래 거주한 경험이 없음에도 뛰어난 실력이었다. 그래도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부족한 점이 많다는 그는 한국어로 책을 쓸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노력하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어?린 시절 문학을 사랑했던 그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다녀오면서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6년 연세대학교에서 수학했던 경험이 역사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정치외교학과 수업에도 나가면서 한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때 ‘통일’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됐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어떤 친구가 한국과 일본의 경제, 인구 규모를 비교하면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한 말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일본처럼 강대국이 될 수 있을 텐데...” 이처럼 모든 한국인들이 통일을 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왜 지금까지 통일이 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반도가 어떻게 분단되었는지,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역사적으로 왜 성공하지 못했는지를 분석하여 통일의 문제를 파헤치고 싶었죠.“
한국 유학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 방향을 결정한 최덕효 박사는 서른 살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코넬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3년부터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내며 동아시아학과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쳤다. 그는 현재 동아시아연구, 구체적으로는 동아시아 냉전, 한국전쟁, 그리고 미국이 남한과 일본을 점령한 시기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역사는 책 속에서 벗어나 도전하는 것
최덕효 박사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신분 덕에 지금 하는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그의 교수법에도 영향을 끼쳤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쳤을 때 일본에 오래 살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내용이 책이나 교과서에 나오지 않기에 더욱 값지다고 말한다.
“일본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 특히 한국과 재일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하면서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최근 한일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면서 영미권 언론에서는 한일간의 갈등과 악감정이 주로 보도됐습니다. 언론 보도만 보면 양 국민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싸우기만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는 한일간의 화해와 상호이해를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활동해 온 양심적인 지식인과 활동가들도 있습니다. 한일 시민사회 간에 연대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그들의 노력으로부터 제가 직접 보고 배우기도 했죠.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주며 교과서나 언론 보도를 통해 배울 없는 사실을 전달하고, 어두운 한일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일말의 빛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 학계에서는 전후 일본의 탄생을 논의할 때 주로 미국이 일본 점령을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어떻게 심었고 일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논의하였다. 최덕효 박사는 이러한 관점의 연구가 전후 일본의 형성을 미-일 관계의 틀 속에서만 보고 있다는 문제점, 그리고 일본제국, 식민주의의 유산이 어떻게 전후 일본 국민국가 형성에 작용했느냐는 시각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저는 박사 논문(전후[1945-1952] 한-미-일 관계의 탈식민화, 민족 문제, 냉전 정치에 관한 연구)에서 일본이 패전 후 새로운 국민국가로서 형성될 때 한반도 탈식민지화 문제와 재일한국인을 둘러싼 여러 문제가 ‘전후일본의 탄생’에 깊이 새겨져 있다는 측면을 분석했습니다. 미국 역사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미-일 중심주의적인 일본 현대사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죠. 저의 대담한 시도를 높이 산 탓인지, 이 논문은 세계 유수의 아시아학회 International Convention of Asia Scholars (ICAS)에서 최우수 인문학 박사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재일한국인의 관점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전망을 넓히다
최덕효 박사는 현재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의 틀을 넓히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 중 대표적인 작업이 바로 ‘한국인’의 정의이다. 그는 한국전쟁의 사회사, 즉 ‘한국인’의 경험을 한반도라는 지리적인 장소에 한정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전쟁, 해방, 분단의 역사를 한반도라는 지리적, 국가적 경계를 넘어 넓은 시야로 민족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저는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재외동포가 ‘한국인’의 개념에 들어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에 대한 결론은 ‘한국인’이라는 개념이 지리적인 경계에 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600명 이상의 재일한국인 학도의용군이 UN군에 편입되어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한편,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 때문에 한국에 사는 가족·친척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되어 일본의 미군 전투기가 한국에 가지 않도록 반대운동을 벌인 재일한국인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피난민들이 몰래 바다를 건너 일본에 피난했다가 밀항자로 잡혀 수용되었다가 송환되는 아픈 경험도 있었고,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재일한국인 좌파활동가들이 전쟁 중에 남한으로 강제 송환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역사 서술과 자기표현의 근본, 언어
한국, 일본, 미국, 영국에서 다양한 학풍을 경험해 본 최덕효 박사는 연구에 있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는 한국, 일본, 미국, 영국에서 연구활동을 해 오면서 각국의 학문 전통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 유학 전에는 주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 전통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역사를 매우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연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구체적인 동아시아연구를 영어권의 수많은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했죠.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제가 하는 일본·남한 미군정 시기 연구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할 필요도 없었는데 미국에서는 그것을 잘 풀고 일반화시켜서 설명해야 그 중요성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즉 이해하기 쉽게 큰 그림이나 비교사적인 그림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최덕효 박사의 해결책은 미국 역사학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내러티브식 역사서술 방법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밀하고 구체적인 역사연구를 하면서도 항상 큰 이야기와 대화하며 비교사적인 시각도 보여 주는 서술 방식을 염두에 두어 왔다.
“역사상을 그리는 데 근본이 되는 수단은 바로 언어입니다. 저는 역사를 이야기하듯이 자연스러운 내러티브로 서술하면서 영어권 독자에게 한반도 분단의 역사와 한국전쟁의 비극, 그리고 재일한국인 역사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역사연구는 미군정의 점령 정책과 같은 정치사도 포함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했는지를 분석하고 그려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을 선명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단어가 독자에게 상기시킬 수 있는 이미지까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최덕효 박사의 말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모어가 아닌 외국어로 작가처럼 글을 쓰려고 하니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합니다. 요즘은 영어와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로도 글을 써야 할 때가 있어서 문체가 헷갈릴 때도 있죠.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늘 노력하는 중입니다. 영어 논문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소설과 사설도 꼼꼼히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포니정재단과 함께하는 연구의 길
최덕효 박사는 포니정 펠로우십 지원 기간 동안 논문(탈식민화의 충격 - 재일조선인의 해방과 일본 사회의 일상적인 폭력, 1945-1947)을 출판하고 책 원고를 마무리하겠다는 연구 포부를 밝혔다. 논문은 원고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영어권 최고 역사 저널 American Historical Review의 초고 심사 결과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는 책을 써서 일본 현대사와 한국 현대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최덕효 박사에게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물었다.
“차기 연구 주제로는 ‘제국과 탈식민지화의 비교 역사사회학’이라는 주제로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동아시아의 탈식민지화를 서구 제국주의의 사례와 비교하는 연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국과 식민지, 그리고 탈식민지화에 관한 영어권 연구에서는 비판이론이나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여러 가지의 새로운 개념과 방법론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과 방법론들은 주로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거나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가 된 지역의 역사를 분석하면서 만들어졌기에, 서구중심주의가 여전히 반복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 연구에서는 서구 제국주의가 아닌 일본 제국주의를 분석하면서, 그리고 일본제국의 지배를 당한 동아시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이나 방법론을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연구 활동을 하면서 재일한국인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